일상생활의 여러 면에서 주기성은 기본적인 전제로 받아들여진다. 어떤 사건이라도 그것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서 ‘이는 전에도 발생한 적이 있다’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을 찾기란 어렵다. 만일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축적하는 데 지침이 될 개념이 결여된다면, 사람들이 새로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동일성의 원형(substratum of identity)이 되는 그 어떤 것을 자신의 과거에서 찾을 수 없다면, 그리고 시간을 측정하는 수단이 없어 양적 관념이 결여된다면, 사건들이란 그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발생하는 시점만 다른 막연한 현상쯤으로 이해될 것이다.

A와 B 사이의 시간은 B와 C 사이 시간의 2배라는 식의 진술도 가능하다. 이때 시간의 양이란 (간격 중에) 개입된 자연적 사건이 반복된 횟수를 관측함으로써 결정된다. 따라서 A와 B 사이 시간의 길이는 며칠, 몇 달 또는 몇 년 등 우리가 나타내고자 하는 반복되는 사건의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다.

실로 문명의 초기에는 이들 시간 측정의 세 양태가 서로 개별적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일관성 있는 단일한 측정체계로 융합시키는 작업은 문명국가나 문명화를 도모하는 국가에게 우선시되는 과학 임무였다. 이 임무의 전말은 우리가 꼭 짚어보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단순하게 어떤 한 해의 일수를 몇(이를테면 365.25…)인지 결정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 선행 작업으로) 계속 이어지는 해마다 동일한 일수로 구성되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 속에는 다양한 주기성이 존재하되 그 어떤 두 가지도 서로 정합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어떤 해는 200일이고 다른 어떤 해는 350일이 되는,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비중이 보다 더 큰 주기들이 보편성을 보이며 일치하는지 여부를 판정하는 일은 자연과학의 일차적 단계에 속한다.

이런 일치성은 직관적인 사유로 밝힐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경험에 의거해 관측된 자연적 사실일 뿐이다. 이를 어떤 필연적인 것으로 보는 한 그것은 결코 정확하게 옳은 것이 될 수 없다. 주기성은 불일치를 보이는 요소를 내포하기 마련이다. 일부 경우에는 이들 불일치 사실들(divergencies)이 쉽게 확인되어 금방 명백히 밝혀진다. 그러나 다른 일부 경우에는 불일치 사실이 명백해지기까지 극도로 세련된 수준의 관측과 천문학적 차원의 정확도가 요구된다.

– “화이트헤드의 수학이란 무엇인가” 중 12장 자연의 주기성 (Periodicity in Nature)

[전문]
자연 생태계는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에 의해서, 즉 아예 동일한 사건의 반복이라 말해도 무리 없을 만큼 너무나 흡사한 사건들이 존재하기에 질서 있게 보인다. 지구의 자전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나날들을 만들어낸다. 그날그날은 분명 그 전날과 다르지만, 우리는 한 날(하루)의 의미를 편의상 추상적으로 정의하여 거기에 담긴 개별성과 우연성을 어느 정도 배제하고 있다. 그러나 한 날에 대한 추상적 정의가 철저한 상태에서는, 임의의 두 날 사이에는 내용상 차이가 전혀 없게 되며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겪는 구체적 현상과는 무관해진다. 즉 하루란 반복되는 지구 자전의 1회일 뿐이다. 그리고 태양의 주위를 도는 지구의 공전궤도 또한 해마다 이어지는 계절의 반복을 만들어내며, 자연계에 또 다른 중요한 주기성을 부여한다. 다소 덜 근본적이지만 또 다른 한 가지 주기성은 달의 위상에 의해 부여된다. 근대 이후의 문명화된 세계에서는 조명기술의 발달로 인해 달의 위상이 지닌 중요성이 많이 희석되었으나, 고대에는 사람들이 달빛에 많이 의지하고 살았다. 따라서 달의 위상에 따르는 독자적 책력체계가 거의 모든 국가에서 발견되었다. 특히 주와 월로 나누는 체계는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해 그들의 종교와 더불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달의 주기성이 실질적으로 지구의 역사에 영향을 끼친 것은 달빛의 밝기의 위상을 통해서가 아니고, 주로 조류를 통해서이다.

우리의 신체 생리 현상도 주기성을 띤다. 그것은 반복되는 심장박동과 호흡에 의해 관장된다. 또한 일상생활의 여러 면에서도 주기성은 기본적인 전제로 받아들여진다. 어떤 사건이라도 그것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서 ‘이는 전에도 발생한 적이 있다’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을 찾기란 어렵다. 만일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축적하는 데 지침이 될 개념이 결여된다면, 사람들이 새로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동일성의 원형(substratum of identity)이 되는 그 어떤 것을 자신의 과거에서 찾을 수 없다면, 그리고 시간을 측정하는 수단이 없어 양적 관념이 결여된다면, 사건들이란 그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발생하는 시점만 다른 막연한 현상쯤으로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런 소박한 이해의 수준은 넘어서고자 한다. 세 사건 A, B, C가 순서대로 발생했을 때, 우리는 A가 B 전에 발생했고 B는 C 전에 발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A와 B 사이의 시간은 B와 C 사이 시간의 2배라는 식의 진술도 가능하다. 이때 시간의 양이란 (간격 중에) 개입된 자연적 사건이 반복된 횟수를 관측함으로써 결정된다. 따라서 A와 B 사이 시간의 길이는 며칠, 몇 달 또는 몇 년 등 우리가 나타내고자 하는 반복되는 사건의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다. 실로 문명의 초기에는 이들 시간 측정의 세 양태가 서로 개별적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일관성 있는 단일한 측정체계로 융합시키는 작업은 문명국가나 문명화를 도모하는 국가에게 우선시되는 과학 임무였다. 이 임무의 전말은 우리가 꼭 짚어보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단순하게 어떤 한 해의 일수를 몇(이를테면 365.25…)인지 결정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 선행 작업으로) 계속 이어지는 해마다 동일한 일수로 구성되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 속에는 다양한 주기성이 존재하되 그 어떤 두 가지도 서로 정합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어떤 해는 200일이고 다른 어떤 해는 350일이 되는,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비중이 보다 더 큰 주기들이 보편성을 보이며 일치하는지 여부를 판정하는 일은 자연과학의 일차적 단계에 속한다. 이런 일치성은 직관적인 사유로 밝힐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경험에 의거해 관측된 자연적 사실일 뿐이다. 이를 어떤 필연적인 것으로 보는 한 그것은 결코 정확하게 옳은 것이 될 수 없다. 주기성은 불일치를 보이는 요소를 내포하기 마련이다. 일부 경우에는 이들 불일치 사실들(divergencies)이 쉽게 확인되어 금방 명백히 밝혀진다. 그러나 다른 일부 경우에는 불일치 사실이 명백해지기까지 극도로 세련된 수준의 관측과 천문학적 차원의 정확도가 요구된다.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심장의 박동처럼 생명체에서 유래하는 반복성은 다른 형태의 반복성에 비해 아주 빠른 진동을 보닝다. 그리고 대단히 안정되고 명확한 반복성 – 이때의 안정성은 고도의 정확성과도 상호 일치함-은 거시적 규모의 지구 운동이나 천체의 운동에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 천문학적 반복성이 동일한 시간 간격을 점한다고 상정하게 된다. 그러나 극도로 세련된 천문학상의 관측에서 검출해낸 불일치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얼핏 생각하기에는 주기성을 보이는 현상들 중에서 아무것이나 어느 하나가 동일한 시간을 점한다고(예컨대 모든 날들은 길이가 같다거나 혹은 모든 해는 길이가 같다고) 가정해둘 뿐, 달리 방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물론 어떤 식으로든 가정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시간의 표준길이를 결정하는 천문학자의 수행과정 전반에 깔려 이쓴ㄴ 가정이란 ‘운동법칙은 정확하게 증명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다루는 반복성은 다른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일치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만일 여러 가지 주기적 사건들 중 이처럼 탁우러한 일치성을 보이는 것이 인간 신체의 일부 특성으로 확인되었다면, 시계를 조정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의사를 찾아가야 마땅하다.

운동법칙이 어떻게 자연의 주기성과 결부된 시간의 표준길이를 결정하는 문제와 연관되는지 보자면, 우선 시간 측정의 기준이 되는 반복성 양태 두 가지가 서로 정합적으로 일관되지 않으면(즉 일정성을 유지하여 항상 일치하지 않으면) 동일한 물체의 속도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 시간을 하루의 1/24로 정의한다고 하자. 그리고 기차가 시속 20마일로 두 시간 동안 등속 운동 하는 경우를 보자. 이때 기간의 길이를 측정해본 결과 극단적인 불일치를 보였는데, 처음 한 시간이 나중 한 시간의 두 배였다고 하자. 그러면 이 같은 시간 측정법에 따라 기차가 달린 기간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각 경우는 모두 기차가 동일한 거리, 즉 20마일을 이동한 기간이다. 그러나 처음 경과기간은 나중 기간의 두 배이다. 그렇다면 기차의 속도는 등속을 띠지 않고, 평균해서 볼 때 후반 기간의 속도가 전반 기간의 속도보다 두 배 빠르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기차가 등속 운동을 했는지의 여부에 관한 물음은 전적으로 우리가 채택하는 시간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의해 달려 있다.

한편 지구상에서 볼 수 있는 사소한 일상 수준으로 제한한다면, 다양한 천문학적 반복성은 절대적인 일치성을 보이는 것처럼 간주될 수도 있다. 더구나 그런 일치성을 상정한다면, 또 그로부터 물체들의 속도와 그 속도의 변화까지 상정한다면, 우리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운동법칙들이 거의 정확히 입증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어떤 천문학적 현상을 직접 결부시키면 그것은 단지 근사적으로 정확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행성과 항성의 회전과 운동속도를 약간 수정해 상정하면 우리는 운동법칙들이 그야말로 정확하게 입증됨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 나면 수정된 내용을 채택하게 된다. 이때 시간의 표준길이가 채택되는데, 그것이 사실상 천문학적 현상에 준거해 정의된 것이기는 해도 어떤 일률성이나 천문학적 현상들 중 어느 하나와 일치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럴지라도 일반적으로 시간의 일률적 흐름은 모든 자연현상의 근거로 간주되면, 그 일률성 자체가 다시 주기적 사건의 관측에 의존한다는 거시적 사실이 여전히 남는다.

표면적으로는 우발적이고 반복성에서 예외인 것으로 보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규칙성을 유지하는 그런 현상도 실은 주기성에 기인한다. 일례로 공명(resonance)의 원리를 살펴보자. 공명이란 서로 연관된(중첩 가능한) 두 조의 사건이 동일한 주기를 가질 때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모든 물ㄹ체는 그것이 방치되어 있을 경우 일정 시간동안 그 물체의 특성에 따른 미세한 진동이 발생한다는 것은 동역학 법칙에 속한다. 따라서 작은 추가 달린 단진자는 항상 그 모양과 무게의 분포와 길이 등의 특성에 따라 일정 시간 동안 진동하기 마련이다. 보다 복잡한 물체는 진동의 방식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각각의 진동 양태는 모두 고유의 자체 ‘주기(period)’를 갖는다. 한 물체가 보이는 이 같은 주기를 그 물체의 ‘자유’주기(free period)라 일컫는다. 따라서 단진자의 경우는 오직 하나의 (자유)주기를 갖고, 현수교처럼 복잡한 물체는 여러 개의 주기를 갖는다. 한편 바이올린 현의 경우처럼 모든 진동주기가 가장 긴 주기의 간단한 약수들인 기구는 우리가 악기로 활용할 수 있다. 즉 가장 긴 주기가 t초일 때 나머지 주기가 1/2t, 1/3t, … 가 되어야 한다. 단 그 나머지 (t보다 작은) 주기들 중 어느 것이 빠지더라도 그것은 무방하다. 이번에는 그 자체가 주기적인 어떤 원인체를 통해 한 물체의 진동을 자극한다고 하자. 이때 원인체의 주기가 물체의 주기와 매우 근사할 경우, 물체의 진동 상태는 매우 격렬해진다. 비록 자극의 강도가 작은 경우에도 결과는 흡사하다. 이런 현상을 ‘공명’이라 일컫는다. 이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흔들바위를 뒤집어놓고자 한다면 그는 밀기에 가장 좋은 시점을 계속 확보하려고 바위가 흔드리는 진동에 ‘장단을 맞추어서(in tune)’ 밀 것이다. 만일 장단을 무시하고 밀면, 어떤 때는 진동이 증폭하고 또 어떤 때는 진동이 멈춘다. 그러나 장단을 맞추어 밀면 미는 힘이 더 효율적으로 전달된다. 공명이란 애초에 소리와 관련된 개념이다. 그러나 그와 동일한 현상이 소리의 영역을 넘어 널리 발생한다. 비슷한 예로 빛의 흡수와 방출의 법칙, 무선전신을 수신하는 쪽의. ‘조정(tuning)’, 행성들이 서로의 운동에 미치는 영향의 상대적 비중, 부대가 발맞추어 통과할 때 현수교에 미치는 위험성, 몇 대의 선박이 어떤 특정한 속도로 운항하며 특정 박자의 기관음을 낼 때 선박에 나타나는 강한 진동은 공명에 의한 현상들이다. 두 주기적 사건의 결합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주기의 중침이 일련의 안정된 현상으로 보일 것이고, 그 결합이 우발적인 일시적 형태라면 격렬하고 돌발적인 폭발로 보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건대, 앞에서 언급한 고유의 진동주기들이란 우리의 감각을 안정되게 작극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의 기저 원인자이다. 우리는 한결같은 조명 아래서 여러 시간 동안 일할 때 반복되며 이어지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과학이 제대로 정립된다면 자연계에는 이와 같은 안정적 지속성을 보이는 실체적 대응물(counterpart)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안정된 조명이란 복사매질을 통해 수없이 많은 주기적 파동(광파)이 우리의 눈을 자극하기 때문이며, 안정된 소리란 공기를 통한 수많은 주기적 파동(음파)이 우리의 귀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광학이나 음향학을 설명하는 일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수학을 자연탐구에 알맞은 도구로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첫 단계는 수학이 사룸의 본유적 주기서을 표현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오직 이 점을 명백히 하기 위해 지금까지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만일 이 점을 간파했다면 우리는 다므에 다룰 수학 개념인 주기함수(즉 삼각함수)의 중요성도 인식할 수 있다.